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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라토, 거세된 소년 가수들의 음악과 아픔

카스트라토는 18세기에 전성기를 이뤘으며 성공하면 인기와 부가 따랐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만 해마다 6천여 명의 소년들이 거세당했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경향신문

 

 

카스트라토는 음악과 인권의 교차점에 서 있는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활동한 거세된 소년 가수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 거세되어 성인이 되어도 고음을 유지할 수 있었고, 당시 음악계에서 독특하고 희귀한 목소리를 지닌 것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음악적 영광뿐만 아니라 많은 아픔과 고통을 동반했습니다.

카스트라토의 배경

카스트라토는 주로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길러졌습니다. 카스트라토의 역사적 배경은 여성의 성가대 참여를 금지한 바티칸의 결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바티칸은 여성 가수가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어린 소년들을 거세하여 카스트라토로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성가대에서 여성 대신 고음을 낼 수 있는 가수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바티칸은 이러한 거세 관행을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성가대에 적용했으며, 교황 시스투스 5세는 1589년 교황 법령을 통해 이 관행을 정식화했습니다. 이러한 결정을 통해 카스트라토는 바티칸의 성가대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카스트라토의 음악적 활동

카스트라토들은 독특한 고음과 강한 폐활량을 지녀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들은 특히 오페라 무대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했으며, 소프라노와 알토의 역할을 주로 맡았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화려하고 풍부하며, 당시 청중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유명한 카스트라토

가장 유명한 카스트라토 중 한 명인 패리넬리는 스페인 왕을 위해 노래를 불렀고, 그의 노래는 왕의 우울증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세네시노는 그의 탁월한 노래 실력으로 많은 부와 명성을 얻었습니다.

카스트라토의 삶

카스트라토는 음악적 성공을 누리기도 했지만, 거세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부작용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비정상적인 뼈 성장, 골다공증, 우울증 등의 문제를 경험했으며,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받았습니다.

카스트라토의 종말과 영향

18세기에 이탈리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거세가 금지되면서 카스트라토의 수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카스트라토로 알려진 알레산드로 모레스키는 20세기 초까지 활동했지만, 이후 카스트라토의 전통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카스트라토의 음악과 삶은 당시 사회의 가혹함과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존재는 음악사뿐만 아니라 인권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장을 차지하며, 오늘날에도 연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는 오래된 녹음과 음악 애호가들의 기록을 통해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음악과 인권의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을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